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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Hacienda Korean Methodist Church - sermon recordings</description>
    <pubDate>Mon, 21 May 2012 18:23:02 -05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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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pyright>Copyright 2012 Hacienda Korean Methodist Church. All rights reserved.</copy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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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3/2011 Serm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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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www.haciendakmc.org/2742'>사순절 주일 설교 (4): 예수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a>
설교: 예수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 (마가복음 1장 9-12절, 누가복음 4장 14-22절)
이재석 담임목사

 크리스찬, 혹은 하나님의 사람, 으로 규정하는 것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판단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신체적으로 약해서도, 부유해지기 위해서도, 부패한 세상을 정의롭게 하기 위하여서도 아닙니다. 빌라도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나 목적은 세상사람들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3절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 때에 부족하고 순간적이며 허망한 우리의 삶이 완전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간동안 나의 형편에 따라 살지말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한 영이 나를 안내해주고, 지도해주고, 만들어주기를 소망하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여 우리에게도 '삶'이라는 것이 주어지고 '생명, 평안,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러한 본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닙입니다. 예수님을 묘사하는 여러 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분'입니다.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성령께서 그를 막았다' 라고 설명합니다. '예수의 영이 그를 막았다.'라고도 표현되는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예수의 영이 성령이다 라는 그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서 살면서 예수님처럼 귀신도 쫓고 병자도 고치고 복음도 대담히 가르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는 고백 위에도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도 질문을 해봅시다, '내가 성령을 받았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어야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자유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좋은 사람, 좋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 안에 주의 영이 들어와있으면 우리의 삶,가정, 교회가 이 시대에 가장 안전한 삶과 가정,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성령으로 준비된 삶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임하면서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3년간의 자기헌신,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얻은 힘으로 인함입니다. 자신감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고, 나를 기뻐하신다'라는 음성이 있을 때 가장 자신있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자처럼,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가장 밝은 곳 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임할 때 가능합니다.
 40일간의 광야에서의 삶 가운데 사탄의 시험, 내적 유혹과 갈등을 겪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 가운데에도 하나님 만이라도 나와 함께한다는 고백을 통해 세상을 이겨내며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부터 21절은 이사야서애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것인데,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을 세상에 포로된 자들을 향하여 전함으로 그들이 해방되어지는 것을 경험해야합니다. 이런 힘과 지혜는 우리 안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임재안에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심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에,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전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a href='http://www.haciendakmc.org/2742'>사순절 주일 설교 (4): 예수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a>
설교: 예수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 (마가복음 1장 9-12절, 누가복음 4장 14-22절)
이재석 담임목사

 크리스찬, 혹은 하나님의 사람, 으로 규정하는 것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판단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신체적으로 약해서도, 부유해지기 위해서도, 부패한 세상을 정의롭게 하기 위하여서도 아닙니다. 빌라도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나 목적은 세상사람들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3절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 때에 부족하고 순간적이며 허망한 우리의 삶이 완전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간동안 나의 형편에 따라 살지말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한 영이 나를 안내해주고, 지도해주고, 만들어주기를 소망하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여 우리에게도 '삶'이라는 것이 주어지고 '생명, 평안,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러한 본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닙입니다. 예수님을 묘사하는 여러 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분'입니다.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성령께서 그를 막았다' 라고 설명합니다. '예수의 영이 그를 막았다.'라고도 표현되는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예수의 영이 성령이다 라는 그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서 살면서 예수님처럼 귀신도 쫓고 병자도 고치고 복음도 대담히 가르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는 고백 위에도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도 질문을 해봅시다, '내가 성령을 받았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어야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자유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좋은 사람, 좋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 안에 주의 영이 들어와있으면 우리의 삶,가정, 교회가 이 시대에 가장 안전한 삶과 가정,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성령으로 준비된 삶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임하면서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3년간의 자기헌신,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얻은 힘으로 인함입니다. 자신감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고, 나를 기뻐하신다'라는 음성이 있을 때 가장 자신있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자처럼,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가장 밝은 곳 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임할 때 가능합니다.
 40일간의 광야에서의 삶 가운데 사탄의 시험, 내적 유혹과 갈등을 겪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 가운데에도 하나님 만이라도 나와 함께한다는 고백을 통해 세상을 이겨내며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부터 21절은 이사야서애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것인데,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을 세상에 포로된 자들을 향하여 전함으로 그들이 해방되어지는 것을 경험해야합니다. 이런 힘과 지혜는 우리 안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임재안에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심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에,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전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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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가? (마가복음 1장 9-12절, 누가복음 4장 14-22절)
이재석 담임목사

 크리스찬, 혹은 하나님의 사람, 으로 규정하는 것은 종교적이고 영적인 판단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신체적으로 약해서도, 부유해지기 위해서도, 부패한 세상을 정의롭게 하기 위하여서도 아닙니다. 빌라도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나 목적은 세상사람들의 방법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토대로 생각하고 행동해야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크리스찬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 8장 13절에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따라 살 때에 부족하고 순간적이며 허망한 우리의 삶이 완전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순절의 기간동안 나의 형편에 따라 살지말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한 영이 나를 안내해주고, 지도해주고, 만들어주기를 소망하면서 살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주장하여 우리에게도 '삶'이라는 것이 주어지고 '생명, 평안,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이러한 본을 보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닙입니다. 예수님을 묘사하는 여러 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분'입니다.
 사도바울이 아시아로 갈 수 없었던 이유를 '성령께서 그를 막았다' 라고 설명합니다. '예수의 영이 그를 막았다.'라고도 표현되는 이 구절을 보았을 때, 예수의 영이 성령이다 라는 그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서 살면서 예수님처럼 귀신도 쫓고 병자도 고치고 복음도 대담히 가르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는 고백 위에도 우리에게 예수의 영이 있어야합니다. 우리도 질문을 해봅시다, '내가 성령을 받았는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확신을 갖어야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자유와 편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까? 좋은 사람, 좋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 안에 주의 영이 들어와있으면 우리의 삶,가정, 교회가 이 시대에 가장 안전한 삶과 가정,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성령으로 준비된 삶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성령이 임하면서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3년간의 자기헌신, 자신의 모든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순간에 얻은 힘으로 인함입니다. 자신감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신감은 '하나님이 나를 보내시고, 나를 기뻐하신다'라는 음성이 있을 때 가장 자신있게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자처럼,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가장 밝은 곳 처럼 살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임할 때 가능합니다.
 40일간의 광야에서의 삶 가운데 사탄의 시험, 내적 유혹과 갈등을 겪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이 이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 가운데에도 하나님 만이라도 나와 함께한다는 고백을 통해 세상을 이겨내며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장 14절부터 21절은 이사야서애 기록된 말씀에 대한 것인데, 이 말씀을 읽는 가운데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 밖에서의 삶을 살아야하는 우리는 우리가 들은 것을 세상에 포로된 자들을 향하여 전함으로 그들이 해방되어지는 것을 경험해야합니다. 이런 힘과 지혜는 우리 안에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영과 능력이 우리 안에 있음으로 예수님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임재안에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심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에,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전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itunes: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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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a href='http://www.haciendakmc.org/3591'>크리스찬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a>

성경말씀: 로마서 14장 6-9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던 마틴루터가 로마서를 가리켜 성경의 심장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도 로마서는 성경의 다이아몬드같다고 말할정도로 로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의 중요성은 다름아닌 신앙의 기초와 신앙인의 갖춰야할 점이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여러 학문/종교/사회를 경험한 성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2-13절 말씀에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그 전의 방식과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살게 됩니다. 로마서 17장 1절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마틴루터는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마틴루터의 로마서 설교집을 읽는 가운데에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영국이 복음으로 깨끗하고 바르게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역사를 변화시킨 로마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믿고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그 목적이 분명해져서 삶이 변화되고 다른 사람의 삶 또한 변화시키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봅니다. 로마서를 가지고 준비한 설교의 마지막으로 오늘은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려합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지역과 시대를 움직였듯 비록 이 본문이 어렵고 지루할지라도 잘 살펴야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기독교가 처한 상황은 로마서 13장 11절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14장에 쓰고있습니다.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의 힘을 벗어난 어려운 고비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우리의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을 꼭 던져야합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질문은 던집니다. 유투브에 "사실에 입각한" 은행의 광고 동영상이 나옵니다. 350만명의 사람들이 본 이 유명한 동영상은 다섯의 친구이야기를 다룹니다. 나이가 81세된 친구들인데, 젊었을 때 함께 오토바이를 타던 이 사람들 중 하나가 죽었고, 폐암으로, 관절염으로, 청력의 손실을, 심장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의 삶은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가운데 살고, 폐암으로 시한부인생을 보내는 사람은 그 시간만 기다리며 의미없이 보내고 있고, 장수에 대해 집착하는 친구가 있고,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네명의 친구가 죽은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였는데, 한 친구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오토바이를 타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6개월간 운동을 하고 인생을 정리한 뒤 13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만을 종단하는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광고는 두 카피로 마무리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인가 What do you live for? 꿈 Dream.

 사람이 사는 이유는 자신의 꿈 때문입니다. 그 목적과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이나 꿈을 위해 산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합니까?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인생을 살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사셨는가?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장면을 살펴봅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나사로의 병과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하였습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 말하십니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병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과정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보다 값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힘들고 괴롭고 비참하다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며 그 것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중에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영광받으시리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함에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으며 살아갑니까?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라고 고백하며 살고있습니까? 로마서 1장 16절의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교회성도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에 잡히시기 직전 기도하는 모습, 그의 떠나기 직전의 말과 생각은 그의 본심일 것인데, 우리의 인생의 꿈도 여기서 발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서 우리의 인생을 발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날 때가 되었고 더이상 할 것이 없다'는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아들을 도와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아들을 도우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받도록 소망하며 나사로가 다시 걸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에 썩었던 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죽기 직전에 반복하는 소원이 있는데, '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소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에 대한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안타깝거나 부족하게 느끼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 수치, 약함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a href='http://www.haciendakmc.org/3591'>크리스찬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a>

성경말씀: 로마서 14장 6-9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던 마틴루터가 로마서를 가리켜 성경의 심장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도 로마서는 성경의 다이아몬드같다고 말할정도로 로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의 중요성은 다름아닌 신앙의 기초와 신앙인의 갖춰야할 점이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여러 학문/종교/사회를 경험한 성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2-13절 말씀에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그 전의 방식과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살게 됩니다. 로마서 17장 1절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마틴루터는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마틴루터의 로마서 설교집을 읽는 가운데에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영국이 복음으로 깨끗하고 바르게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역사를 변화시킨 로마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믿고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그 목적이 분명해져서 삶이 변화되고 다른 사람의 삶 또한 변화시키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봅니다. 로마서를 가지고 준비한 설교의 마지막으로 오늘은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려합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지역과 시대를 움직였듯 비록 이 본문이 어렵고 지루할지라도 잘 살펴야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기독교가 처한 상황은 로마서 13장 11절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14장에 쓰고있습니다.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의 힘을 벗어난 어려운 고비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우리의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을 꼭 던져야합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질문은 던집니다. 유투브에 "사실에 입각한" 은행의 광고 동영상이 나옵니다. 350만명의 사람들이 본 이 유명한 동영상은 다섯의 친구이야기를 다룹니다. 나이가 81세된 친구들인데, 젊었을 때 함께 오토바이를 타던 이 사람들 중 하나가 죽었고, 폐암으로, 관절염으로, 청력의 손실을, 심장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의 삶은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가운데 살고, 폐암으로 시한부인생을 보내는 사람은 그 시간만 기다리며 의미없이 보내고 있고, 장수에 대해 집착하는 친구가 있고,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네명의 친구가 죽은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였는데, 한 친구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오토바이를 타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6개월간 운동을 하고 인생을 정리한 뒤 13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만을 종단하는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광고는 두 카피로 마무리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인가 What do you live for? 꿈 Dream.

 사람이 사는 이유는 자신의 꿈 때문입니다. 그 목적과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이나 꿈을 위해 산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합니까?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인생을 살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사셨는가?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장면을 살펴봅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나사로의 병과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하였습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 말하십니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병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과정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보다 값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힘들고 괴롭고 비참하다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며 그 것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중에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영광받으시리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함에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으며 살아갑니까?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라고 고백하며 살고있습니까? 로마서 1장 16절의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교회성도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에 잡히시기 직전 기도하는 모습, 그의 떠나기 직전의 말과 생각은 그의 본심일 것인데, 우리의 인생의 꿈도 여기서 발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서 우리의 인생을 발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날 때가 되었고 더이상 할 것이 없다'는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아들을 도와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아들을 도우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받도록 소망하며 나사로가 다시 걸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에 썩었던 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죽기 직전에 반복하는 소원이 있는데, '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소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에 대한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안타깝거나 부족하게 느끼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 수치, 약함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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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로마서 14장 6-9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부패한 종교를 개혁했던 마틴루터가 로마서를 가리켜 성경의 심장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 바클레이도 로마서는 성경의 다이아몬드같다고 말할정도로 로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서의 중요성은 다름아닌 신앙의 기초와 신앙인의 갖춰야할 점이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인생의 의미를 찾아 여러 학문/종교/사회를 경험한 성 어거스틴은 로마서 13장 12-13절 말씀에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그 전의 방식과 다른 삶의 방식을 갖고 살게 됩니다. 로마서 17장 1절의 말씀에 감동을 받은 마틴루터는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마틴루터의 로마서 설교집을 읽는 가운데에 복음의 전도자가 되어 영국이 복음으로 깨끗하고 바르게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토록 역사를 변화시킨 로마서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심을 믿고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그 목적이 분명해져서 삶이 변화되고 다른 사람의 삶 또한 변화시키는 삶을 살기를 기대해봅니다. 로마서를 가지고 준비한 설교의 마지막으로 오늘은 우리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려합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지역과 시대를 움직였듯 비록 이 본문이 어렵고 지루할지라도 잘 살펴야합니다. 바울은 당시 로마 기독교가 처한 상황은 로마서 13장 11절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우리의 구원이 훨씬 더 가까워졌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14장에 쓰고있습니다. 분명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 우리의 힘을 벗어난 어려운 고비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한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장단에 관계없이 우리의 상황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가'라는 질문을 꼭 던져야합니다.

 이 질문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이 질문은 던집니다. 유투브에 "사실에 입각한" 은행의 광고 동영상이 나옵니다. 350만명의 사람들이 본 이 유명한 동영상은 다섯의 친구이야기를 다룹니다. 나이가 81세된 친구들인데, 젊었을 때 함께 오토바이를 타던 이 사람들 중 하나가 죽었고, 폐암으로, 관절염으로, 청력의 손실을, 심장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친구들의 삶은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그리움가운데 살고, 폐암으로 시한부인생을 보내는 사람은 그 시간만 기다리며 의미없이 보내고 있고, 장수에 대해 집착하는 친구가 있고, 죽을날만을 기다리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네명의 친구가 죽은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 모였는데, 한 친구가 제안을 하게 됩니다. 예전처럼 오토바이를 타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목표를 위해 6개월간 운동을 하고 인생을 정리한 뒤 13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대만을 종단하는 대업을 이루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담은 광고는 두 카피로 마무리를 합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 것인가 What do you live for? 꿈 Dream.

 사람이 사는 이유는 자신의 꿈 때문입니다. 그 목적과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자신의 즐거움이나 꿈을 위해 산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합니까?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의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경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요한복음의 공통점은 예수님의 인생을 살핀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하여 사셨는가?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장면을 살펴봅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죽음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나사로의 병과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하였습니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 말하십니다. 불행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병중에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과정속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다른 사람의 인생보다 값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잘살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힘들고 괴롭고 비참하다하더라도 이것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살만한 것이며 그 것을 통해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병중에 죽어가는 가운데에도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영광받으시리라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썩는 냄새가 난다고 함에도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내 말이 네가 믿으면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믿으며 살아갑니까?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다 라고 고백하며 살고있습니까? 로마서 1장 16절의 "이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경험하고 고백하는 교회성도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에 잡히시기 직전 기도하는 모습, 그의 떠나기 직전의 말과 생각은 그의 본심일 것인데, 우리의 인생의 꿈도 여기서 발견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내 인생에서 하나님의 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에서 우리의 인생을 발견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날 때가 되었고 더이상 할 것이 없다'는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아들을 도와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도록 아들을 도우소서'라고 마지막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받도록 소망하며 나사로가 다시 걸어 나오도록 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소망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자 할 때에 썩었던 살에 생기가 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은 죽기 직전에 반복하는 소원이 있는데, '이 아들을 영화롭게 하소서'라고 간절히 구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죄를 소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말에 대한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죽어가는 순간에 안타깝거나 부족하게 느끼지 않고,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것 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음을 만족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과 아픔, 수치, 약함이 약점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산다는 바울의 고백처럼, 먹든지 마시던지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하여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itunes: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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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로마서 12장 1-13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2011년의 7월 한달,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폭우로 인한 피해가 크게 발생하였고,  평화의 상징과 같은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93명이 살해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주간 국가의 빚때문에 국민의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였습니다. 자연재해나 국가의 어려움, 또는 인간 윤리의 문제점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안정과 안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살기좋은 지역"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옷가게에서는 만족스러워할만한 친절과 양심을 베풀어야할 것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봉사만으로는 세상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집이나 가게, 일터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지킬 규정을 따르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인 도움을 줄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독일 여행객 한 사람은 그의 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뱃머리를 돌려 죽을 위기에 처한 30명의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비유를 흔히 사용합니다. 때문에 재미가 없고 편안하지 않은 곳은 일부러라도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집어넣고 생명을 구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58%가 루터교 신자인 노르웨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바른사람들입니다. 반면 편협한 기독교도의 모습 또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독일인 여행객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몸에 벤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삶의 방식을 행하는 것이 훨씬 복음적입니다.  한국의 폭우로 인한 피해가 집계되는 이 시점에 한 빌딩은 지하 3층까지의 주차장이 있음에도 침수되지 않은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빌딩을 처음 건축할 때 폭우를 대비하여 만든 방수벽이 그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의 때와 같이 재앙을 대비한 그들의 지혜는 100년만의 폭우가운데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해진 방주는 없겠습니까. 힘든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 주변의 방어막을 치고, 특별한 안전지역에 들어가야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곳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삶을 살고있다면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내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는 죽어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나온 것 처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일에 대해 자책감을 갖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내가 있는지,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자책감을 갖지 마십시오. 많은 교인들이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수치와 죄책감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총과 사랑의 주님 안에 있다면 그 삶의 부담은 예수님께서 감당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주인'이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님의 용서를 입었다면 누구라도 '용서하며, 인자하게하며, 불쌍하기 여기며'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느끼는 모든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봉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기억하십시오. 손님이 오면 접대를 위해 식당에 갑니다. 보통은 많은 음식을 먹기위해 부페를 향하지만 더 극진히 대접하고픈 손님이 온다면 일품요리집에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처럼 교회 각처의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우리 한 손길손길을 하나님은 누구와도 차등이 없도록 만족할만한 은혜를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기억하며 헌신해보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새로운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찾아 행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도 편하고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분량에 맞게 일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과정에 서로 사랑하며 우애하고 존경해야할 것입니다. 성도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는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힘든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우리 안에 가져오기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받은 은사에 감사하고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여 한몸된 지체로 성실과 부지러움과 즐거움과 의로 존경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리스도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 되시길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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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로마서 12장 1-13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2011년의 7월 한달,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폭우로 인한 피해가 크게 발생하였고,  평화의 상징과 같은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93명이 살해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주간 국가의 빚때문에 국민의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였습니다. 자연재해나 국가의 어려움, 또는 인간 윤리의 문제점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안정과 안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살기좋은 지역"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옷가게에서는 만족스러워할만한 친절과 양심을 베풀어야할 것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봉사만으로는 세상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집이나 가게, 일터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지킬 규정을 따르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인 도움을 줄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독일 여행객 한 사람은 그의 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뱃머리를 돌려 죽을 위기에 처한 30명의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비유를 흔히 사용합니다. 때문에 재미가 없고 편안하지 않은 곳은 일부러라도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집어넣고 생명을 구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58%가 루터교 신자인 노르웨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바른사람들입니다. 반면 편협한 기독교도의 모습 또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독일인 여행객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몸에 벤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삶의 방식을 행하는 것이 훨씬 복음적입니다.  한국의 폭우로 인한 피해가 집계되는 이 시점에 한 빌딩은 지하 3층까지의 주차장이 있음에도 침수되지 않은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빌딩을 처음 건축할 때 폭우를 대비하여 만든 방수벽이 그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의 때와 같이 재앙을 대비한 그들의 지혜는 100년만의 폭우가운데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해진 방주는 없겠습니까. 힘든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 주변의 방어막을 치고, 특별한 안전지역에 들어가야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곳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삶을 살고있다면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내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는 죽어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나온 것 처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일에 대해 자책감을 갖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내가 있는지,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자책감을 갖지 마십시오. 많은 교인들이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수치와 죄책감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총과 사랑의 주님 안에 있다면 그 삶의 부담은 예수님께서 감당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주인'이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님의 용서를 입었다면 누구라도 '용서하며, 인자하게하며, 불쌍하기 여기며'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느끼는 모든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봉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기억하십시오. 손님이 오면 접대를 위해 식당에 갑니다. 보통은 많은 음식을 먹기위해 부페를 향하지만 더 극진히 대접하고픈 손님이 온다면 일품요리집에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처럼 교회 각처의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우리 한 손길손길을 하나님은 누구와도 차등이 없도록 만족할만한 은혜를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기억하며 헌신해보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새로운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찾아 행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도 편하고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분량에 맞게 일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과정에 서로 사랑하며 우애하고 존경해야할 것입니다. 성도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는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힘든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우리 안에 가져오기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받은 은사에 감사하고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여 한몸된 지체로 성실과 부지러움과 즐거움과 의로 존경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리스도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 되시길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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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구절: 로마서 12장 1-13절
설교:   이재석 담임목사

2011년의 7월 한달,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살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폭우로 인한 피해가 크게 발생하였고,  평화의 상징과 같은 나라, 노르웨이에서는 93명이 살해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한주간 국가의 빚때문에 국민의 마음에 염려가 가득하였습니다. 자연재해나 국가의 어려움, 또는 인간 윤리의 문제점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안정과 안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살기좋은 지역"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옷가게에서는 만족스러워할만한 친절과 양심을 베풀어야할 것입니다. 이런 전문적인 봉사만으로는 세상을 평화롭고 안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집이나 가게, 일터에서 법과 양심에 따라 지킬 규정을 따르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인 도움을 줄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독일 여행객 한 사람은 그의 말에 따르면 "본능적"으로 자신의 뱃머리를 돌려 죽을 위기에 처한 30명의 사람을 구해냈습니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는 비유를 흔히 사용합니다. 때문에 재미가 없고 편안하지 않은 곳은 일부러라도 피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위험한 상황속에 자신을 자발적으로 집어넣고 생명을 구하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58%가 루터교 신자인 노르웨이의 사람들은 대부분 신실하고 바른사람들입니다. 반면 편협한 기독교도의 모습 또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한편, 이 독일인 여행객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몸에 벤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자신이 믿는 삶의 방식을 행하는 것이 훨씬 복음적입니다.  한국의 폭우로 인한 피해가 집계되는 이 시점에 한 빌딩은 지하 3층까지의 주차장이 있음에도 침수되지 않은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빌딩을 처음 건축할 때 폭우를 대비하여 만든 방수벽이 그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의 때와 같이 재앙을 대비한 그들의 지혜는 100년만의 폭우가운데서 그들의 재산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준비해진 방주는 없겠습니까. 힘든 세상을 살아내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우리 주변의 방어막을 치고, 특별한 안전지역에 들어가야만 안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느곳에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삶을 살고있다면 우리의 환경이 우리를 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내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는 죽어가는 삶이 아니라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나온 것 처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우리자신이 말하고 행동한 일에 대해 자책감을 갖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안에 내가 있는지,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내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자책감을 갖지 마십시오. 많은 교인들이 과거에 있었던 자신의 수치와 죄책감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은총과 사랑의 주님 안에 있다면 그 삶의 부담은 예수님께서 감당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주인'이라 고백하고 용서의 은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님의 용서를 입었다면 누구라도 '용서하며, 인자하게하며, 불쌍하기 여기며'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느끼는 모든 감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서로 용서하고 봉사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한 몸을 이루는 지체임을 기억하십시오. 손님이 오면 접대를 위해 식당에 갑니다. 보통은 많은 음식을 먹기위해 부페를 향하지만 더 극진히 대접하고픈 손님이 온다면 일품요리집에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처럼 교회 각처의 각 분야에서 봉사하는 우리 한 손길손길을 하나님은 누구와도 차등이 없도록 만족할만한 은혜를 더하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기억하며 헌신해보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새로운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찾아 행할 때에 우리의 마음에도 편하고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분량에 맞게 일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과정에 서로 사랑하며 우애하고 존경해야할 것입니다. 성도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님 대접하는데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우리는 힘든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를 우리 안에 가져오기 위해 희생하며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받은 은사에 감사하고 주어진 능력을 발휘하여 한몸된 지체로 성실과 부지러움과 즐거움과 의로 존경하며 하나님을 섬기면서 그리스도안에서 그 은혜를 누리는 성도들 되시길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itunes: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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